그래픽, 분명히 다른 차원이다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 리마스터에서 가장 먼저 체감되는 변화는 단연 그래픽이다.
Unreal Engine 5를 기반으로 재구성된 이 세계는 거친 텍스처의 시로딜을 한 편의 회화처럼 되살려냈다.
- 숲은 밀도감 있게 울창하고,
- 도시의 석조 건물은 실제 빛의 반사를 따라 그 질감을 달리하며,
- 밤에는 별빛이 반사되는 호수의 수면이 고요히 흔들린다.
NPC의 얼굴도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됐다.
예전의 '괴기스러운 인형같은 얼굴들'이 사라졌고, 지금은 좀 더 생명력 있는 표정과 자연스러운 눈동자 움직임으로 바뀌었다.
다만, 이 부분은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다.
오블리비언 특유의 기묘함을 좋아하던 이들에게는 조금 너무 ‘정상화된’ 세계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 복잡하지만 자유롭다
오블리비언의 캐릭터 생성은 지금 봐도 굉장히 정교하다.
리마스터에서도 이 시스템은 유지되었으며, UI가 훨씬 깔끔하게 정돈되어 처음 접하는 유저도 진입 장벽 없이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 종족 선택은 10가지 이상
- 생일(Birthsign)을 선택하면 특수 능력을 얻을 수 있으며
- 클래스는 기본 제공 외에 사용자가 직접 만들 수도 있다.
근력 중심 전사도 좋고, 어둠 속에서 활을 쏘는 나이트블레이드도 좋다.
혹은, 마법과 연금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학자도 가능하다.
이처럼 “내가 누구인가”를 게임 내에서 스스로 정의하게 만드는 방식은 지금의 RPG들보다도 오히려 더 진보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세계 구성과 퀘스트 –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게 장점
리마스터에서도 메인 스토리는 변하지 않았다.
제국 황제가 죽고, 플레이어는 오블리비언 게이트로부터 세계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이 세계는 메인 퀘스트를 따라가는 것보다 다른 길로 빠지는 재미가 훨씬 크다.
- 도둑 길드에서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거짓 편지를 쓰기도 하고,
- 어둠의 형제단에서는 살인을 연기하기 위해 연극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 어떤 마을에선 마법사의 모자를 훔친 엘프를 추적해야 하고,
- 또 다른 지역에선 데이드릭 신의 축복을 받기 위해 희생물을 바쳐야 한다.
이 게임이 뛰어난 점은, 그 어떤 퀘스트도 딱히 '의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게 선택이고, 그 선택이 결과를 낳는다.
여기서 오는 자유도는 지금의 오픈월드 게임들도 쉽게 따라올 수 없다.
사운드와 음성, 추억과 새로움의 절묘한 균형
배경 음악은 여전히 Jeremy Soule의 명곡들이 흐른다.
잔잔한 현악기 선율이 낮은 언덕을 걸을 때 묘하게 감정을 자극하고,
동굴 속 어둠에서 긴장감을 높이는 드럼은 여전히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번 리마스터에서는 일부 음성 연기가 새롭게 녹음되었으며,
특히 황제를 연기한 Patrick Stewart의 대사는 조금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NPC 간 대화도 보다 자연스러워졌고, 말투가 덜 반복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여전히 약간 어색한 대사 타이밍.
하지만 그건 오히려 반갑다.
"아, 이 게임이 맞구나." 싶다.
전투 시스템 – 불편하지만 익숙한 그 맛
전투 시스템은 여전히 투박하다.
방패를 들어야만 방어가 되며, 활을 쏠 땐 거리를 재며 신중해야 한다.
최근 게임들처럼 ‘패링’, ‘카운터 어택’ 같은 개념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느린 리듬이 오히려 이 게임의 핵심이다.
매 공격이 무게감 있게 다가오고, 마법을 날릴 땐 그 긴 캐스팅 시간이 간절하다.
적의 종류도 꽤 다양하다.
고블린, 데이드라, 스켈레톤, 늑대, 뱀파이어…
각각 약점과 속성이 다르며, 전투를 통해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된다.
개선된 편의성 – "드디어 쓸만해졌다!"
리마스터에서 가장 크게 개선된 부분 중 하나가 UI와 편의성이다.
- 퀘스트 추적 시스템은 직관적으로 바뀌었고
- 지도 줌/이동도 쾌적해졌다.
- 인벤토리 정렬이 가능하고,
- 마법 장착이나 단축키 사용도 직관적으로 개선됐다.
특히 콘솔 유저에게는 패드 조작의 부드러움이 꽤 만족스럽다.
이전의 뻑뻑한 조작감은 거의 사라졌고, 액션과 이동이 부드러워졌다.
아쉬운 점 – 아직 완전한 '현대 게임'은 아니다
프레임 드랍은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도시 진입 시, 문을 여는 순간 발생하는 로딩/프리즈는 Immersion을 방해한다.
그리고 NPC의 AI는 과거 그대로라서,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또한, 일부 퀘스트는 여전히 불친절하거나 버그에 취약하다.
그렇다고 게임을 망친다고 보긴 어렵지만,
“베데스다답다”는 감정과 “이젠 좀 바뀌었어야 하지 않나”는 감정이 함께 든다.
최종 평가 – 리마스터라는 이름에 걸맞은 귀환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 리마스터는 단순한 '추억팔이'가 아니다.
이 게임은 여전히 살아 있고,
그 시절의 거친 감성과 현대적 세련미가 묘하게 공존하고 있다.
신규 유저에겐 다소 낯설 수 있지만,
한 번이라도 원작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이 리마스터는 ‘시간을 거슬러 떠나는 여행’**과도 같다.
리뷰 요약
- 추천 대상: 고전 RPG 팬, 스카이림 이전의 오픈월드를 경험하고 싶은 유저
- 비추천 대상: 현대식 전투 시스템과 빠른 진행을 원하는 유저
- 총평: ★★★★☆ (4.5에 가깝지만, 최적화로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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